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스카 와일드 (문단 편집) == 여담 == * 오랫동안 와일드는 순수한 유미주의를 상징하는 작가로 여겨졌으나, 근래에 들어서는 그의 예술관과 미학에서 도덕성을 완전히 분리할 수는 없다는 견해도 주목되었다. '''(스포일러 주의)''' 이는 그의 대표작이면서 유미주의적 예술관에 대한 강력한 변론으로 간주되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결말부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주인공 도리언 그레이가 자기중심적이고 탐미적인 예술가로 등장하여 작품 전반에 걸쳐 와일드의 유미주의관을 살포하는 역할을 맡긴 하나, 결말에 들어서는 결국 그 역시 자신의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에, 와일드가 다른 가치들과의 상호작용 없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변호하기 위해서 이 작품을 쓴 것치고는 결말이 이중적이라는 것이다.[* 정정호 and 이종찬. (2009). 오스카 와일드의 유미주의 재론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 나타난 미적 ‘감각’과 미의 ‘공적 효용성’의 문제. 세계문학비교연구, 29, 203-227. 참조.] * [[모리세이]]가 거의 숭배할 정도로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 [[백괴사전]]에서는 오스카 와일드를 '백괴사전의 시조'라고 칭한다. 보통 [[쿨데레|무심한듯 시크]]함을 숭배한다. 사실 이는 [[언사이클로피디아]] 계열 사이트 공통. 하여튼 언사이클로피디아의 시조다. 근데 백괴사전 쪽은 아무래도 미국식 유머에 적응하기가 힘들어서인지 오스카 와일드의 비중은 적은 편이다. [[미국]]판 언사이클로피디아에 들어가보면 오스카 와일드 인용문(?)을 한가득 볼 수 있다. * [[TV Tropes]]의 [[현실]] 항목의 등장인물 목록의 각 카테고리 아래에 [[너]], [[우리]], [[예수]], [[셰익스피어]], [[아돌프 히틀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척 노리스]] 등과 함께 특별히 언급되어 있다.[[http://tvtropes.org/pmwiki/pmwiki.php/Characters/RealLife|#]] * 와일드가 [[사회주의자]]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단순히 호감을 가진 정도가 아니라, [[표트르 크로포트킨]]의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 하에서의 인간의 정신>[[https://en.wikipedia.org/wiki/The_Soul_of_Man_under_Socialism|#]]>을 저술했을 만큼 적극적으로 사회주의를 지지했다. 사유재산제가 폐지되면 개인은 맹목적으로 노동하면서 부의 축적에만 골몰할 필요가 없어지므로 창조성을 발휘할 삶의 여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 와일드의 견해였다. 즉, 사회주의를 [[개인주의]]를 위한 건널목으로 해석한 것이다. 동시에 사회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충분히 보장하지 않는다면 암울한 폭정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도 했다. 그의 작품에 나온 "사회주의의 문제는 그것이 너무도 많은 저녁시간을 앗아간다는 것이다."라는 구절에서 드러나듯, 잘못된 방향의 사회주의가 가질 한계 역시 인정한 셈이다. 실제로 <행복한 왕자>가 당대 영국의 노동환경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담고 있는 등, 와일드의 작품들은 직접 사회주의를 설파하지는 않더라도 간접적인 영향은 곧잘 드러낸다. * 사회적으로도 급진적인 인사였다. 엄숙주의와 성적 억압이 만연하면서도 위선이 팽배해 있었던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관에 저항하거나 자신의 동성애 행위를 변호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헤이마켓 사건]]의 판결에 부당함을 느낀 [[조지 버나드 쇼]]가 구명운동을 펼칠 때 당대의 문인 중에서 유일하게 서명운동에 응했다. * 그의 연인 더글러스의 후일담. 더글러스도 후에 와일드처럼 프랑스로 건너갔으나, 양가의 재정지원을 끊어버리겠다는 협박에 결국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다. 이후의 인생 역시 순탄치 못했다. 결혼한 아내도 나중에 아들과 함께 더글러스를 떠났고 하나뿐인 아들 역시 1964년에 죽을 때까지 분열 정동정신병[* 양극성 기분 장애와 정신 분열증이 동시에 드러나는 증상.]으로 인해 [[정신병원]]에서 평생을 보내야 했다. 또 [[윈스턴 처칠]]을 비방한 혐의로 감옥에 6개월간 투옥되었다. 이때 수감하면서 와일드의 '심연속에서'을 연상시키는 '높은곳에서'(In Eexcelsis)라는 시집을 쓴다. 더글러스는 1945년 74세의 나이로 울혈성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그는 1935년 91세의 나이로 사망한 어머니와 함께 3월 23일 크롤리의 [[프란치스코회]] [[수도원]] 묘지에 묻혔다. * 영국에서 동성애 행위가 불법이던 시기 처벌을 받은 다른 유명인사로는 [[앨런 튜링]]이 있다. 튜링과 와일드 모두 더 이상 동성애가 범죄로 여겨지지 않게 된 이후에 사후 사면을 받았다. [각주] [[분류:오스카 와일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